'The writing which corresponds to 단군' 1

  1. 2008/10/16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이 없다.

분류없음 2008/10/16 09:31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이 없다


모처럼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였다. 과연 새로 지은 박물관 답게 웅장하면서 국민들과 함께 하는 역사마당으로 넉넉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다만 건물이 전통 한옥 양식이라면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상념을 떠 올리면서 전시관에 들어섰다. 


먼저 전시관 1층 고고관(考古館)에 들어가 “구석기⇒신석기⇒청동기ㆍ초기철기⇒원삼국⇒고구려⇒백제⇒가야⇒신라⇒통일신라⇒발해” 순으로 10개의 전시실에서 4,500여점의 유물을 만나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원삼국’실 앞에 자리매김되어야 하는 ‘고조선’실이 없다는 점이다. 국조 단군께서 2,333년 전에 나라를 세웠고 그 후손들이 고구려 등 삼국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


그러면서도 ‘청동기 시대’ 설명문에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건국되었다. 고조선의 세력범위는 요령식 동검(*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고인돌 등의 범위로 보아 중국의 요녕(遼寧)지역과 한반도 서북지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고조선의 역사적 실재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선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고조선은 실재하지만 ‘고조선 전시실’은 꾸며 놀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더욱이 지난 10.3, 제 4340주년 개천절 경축식이 국무총리 등 정부 및 각계 인사, 주한외교사절, 시민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으며 또한 마니산 참성단에서 개천대제(開天大祭), 강원 태백산에서 천제(天祭)가 열리는 등 3대 국경일의 하나인 개천절 기념행사가 민·관에서 다채롭게 열린 점을 상기하면 납득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민과 정부와는 엇갈리는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과 “내가 잘 못 알고 있나”라는 회의가 불현듯 피어 올랐다.


그래서 우리 중학교 국사책(2008.3, 7쇄)을 구해 확인해 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배운 국사가 이미 너무 오래 전이라 그간 학설이 변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아하 그랬구나”, 의문점이 풀리게 되었다.


중학교 국사책에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은 우리 나라의 역사가 매우 오래 되었음을 말해 준다”고 가볍게 신화(神話)로 언급하면서 “문헌에 나타나는 고조선은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정치적 변화를 거친다. 문헌 사료가 부족 하므로 고조선의 영토를 알기 위해서는 고고학적 자료를 이용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국사책이 말하는 것은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ㆍ유적인 비파형 동검, 고인돌(탁자식) 등의 분포로 보아 고조선이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존재한 것은 역사이지만 BC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것은 문헌사료(삼국유사)만 있지 고고학적 자료가 없어 사실(史實)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다만 ‘국사 연표’에는 “BC 2,333 고조선 건국”을 표기)


또 국사책에는 “기원전 2세기 경, 서쪽 지방에서 세력을 키운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왕이 되었다”(BC194)고 두루뭉실 언급한데 이어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은 막강한 한(漢)의 대군을 맞아 1년 동안 버티며 잘 싸웠으나, 결국 왕검성이 함락되고 고조선은 멸망하였다”(BC108)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만이 세력을 키운 서쪽 지방은 어디인가? 고조선 영토 내의 서쪽인가. 아니면 고조선 영토 밖인가. 그런데 위만이 다른 나라(* 연 나라로 알려짐)사람이라면 고조선 준왕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가 어떻게 고조선이란 말인가.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실에 ‘고조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오류가 아니라 우리 국사학계의 오래된 실증사학, 식민사관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국립중앙박물관은 ‘고조선 실’을 꾸며 놓아야 한다. 청동기시대 전시실의 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미송리식 토기, 그리고 고인돌 만으로도 아쉽지만 고조선의 역사적 실재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고조선 실’이 없다는 것은 고조선 존재를 부인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칫 ‘고조선사는 중국사’라고 강변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도와주는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은 '요령식 동검'표기도 '요령'이 중국 요하지역의 지명이란 점에서 국사 교과서 처럼 '비파형 동검'으로 고쳐야 한다. 우리 민족이 만든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은 비파형 동검인데 황하 유역에서 출토되는 중국식 동검과는 모양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

한편 우정사업본부는 우표 발행 124년 역사상 최초로 단군왕검 특별우표를 지난 7.10부터 발매하고 있다. “단군왕검 특별우표라고 한 것은 단군과 단군왕검을 구분하기 위한 조치로서 최근 연구들은 단군이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47대를 이어온 고조선 왕조의 지배자 명칭인데 첫 번째 단군이 ‘왕검’이고 47대 단군이 ‘고열가’라는 주장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조는 1대 단군인 ‘왕검’이어야 하기에 단군왕검 특별우표로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동아, 08.7.8)


참으로 민족의 역사를 정립하려는 시의적절한 쾌거이다. 중국이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가 한창인 이때, ‘신화’라고 버려두었던 민족 고대사를 복원하려는 노력이란 점에서 우리 국사학계도, 국립중앙박물관도 종래의 타성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 되찿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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